◎법치주의
1. 의의
법치주의(法治主義)라 함은 인간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한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든지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가할 때에는 반드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거나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며, 또 법률은 국민만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담당자도 규율한다. 법치주의는 적극적으로는 국가권력발동의 근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소극적으로는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법치주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며, 권력분립을 제도적 기초로 한다.
근대의 법치국가는 ‘행정과 재판의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적합하도록 행해질 것을 요청할 뿐, 그 법률의 목적이나 내용을 문제 삼지 아니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를 의미하였으나, 현대에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률을 도구로 이용한 ‘법을 통한 독재’를 거부하고 실질적 법치주의를 요청하고 있다.
실질적 법치주의란, 법적 안정성의 유지와 더불어 인간의 존엄이라든가 실질적 평등과 같은 정의의 실천을 내용으로 하는 법에 의한 통치 원리를 의미한다. 형식적 법치주의가 통치의 합법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실질적 법치주의는 통치의 정당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 법치주의가 확립되려면 최소한 국민이 참여하는 행정통제와 사법적 권리구제제도가 실천되어야 한다.
□ 형식적 법치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
종류 | 의미 | 특징 |
형식적 법치주의 | 형식적인 실정법 규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 통치의 합법성만 중시하고 법의 내용은 무시한다. |
실질적 법치주의 | 정의에 합치되는 정당한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 통치의 정당성을 중시하므로 법 내용도 정당해야 한다. |
□ 법치주의의 역사
법은 ‘도덕의 최소한(das ethische Minimum)’이라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한 이 말은 법의 생성기원을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고 있다. 즉 ‘좋은 말로 되던 시절이 지나자 많은 윤리도덕 가운데 최소한 이것은 지키자’며 만든 것이 법이라는 것이다. 법 없이도 잘 살던 원시사회를 지나 사람 사이에 계급과 갈등이 생기고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 법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인류 최고(最古)의 법은 BC 235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우루카기나 법전이다. 도둑질과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사형에 처한다는 등의 규정을 둔 이 법전은 그러나 기록에만 나올 뿐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법전은 BC 2050년경 수메르의 우르나무 법전이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BC 1700년께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법전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비문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법전의 ‘눈에는 눈’이란 이른바 탈리오의 법 정신은 오늘날 중동국가들의 법에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 이전까지의 평온한 시대엔 법이 예(禮)를 보완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전국시대 급격한 사회변동을 거치면서 예만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禮治)이 불가능해지자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法治)는 법가(法家)가 등장했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은 한비자(韓非子)지만 법치를 처음 설파한 인물은 제(齊) 환공(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룬 관중(管仲)이다. 청 말의 량치차오(梁啓超)는 「관자전」에서 “법치는 다스림의 가장 옳은 제도로, 세계 역사상 이를 가장 먼저 들고 나와 체계를 세운 사람이 관자이다.”라고 했다.
근대적 의미의 법치주의는 영국의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독일의 ‘법치국가(Rechtsstaat)’란 용어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독재를 거부하고 법에 따른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 실질적 법치주의의 실현방안
(1) 권력분립(權力分立, seperation of powers)제도
17세기 말 영국의 J.로크에 의하여 입법권과 집행권의 2권분립론이 주창되어 그것이 18세기 초에 프랑스의 C.S.몽테스키외에 의하여 3권분립주의로 완성되었으며, 18세기 말에 이르러 1787년 미국 헌법과 91년 프랑스 헌법에 채택된 후 세계 각국 헌법에 계수되어 근대입헌주의 헌법의 본질적 요소 또는 기본원리로 확립되었다.
3권분립주의는 국가권력을 입법·사법·행정의 3권으로 나누어 각각 입법부(의회)·사법부(법원)·행정부(정부 또는 내각)에 분담시켜 서로 견제·균형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인데, 그 구체적 발현형태는 나라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2) 헌법재판제도
헌법과 관련된 사건을 재판하는 것이 헌법재판인데 우리나라는 일반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담당한다. 헌법재판에 의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심판된 법률은 그 효력이 상실되고,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을 구제해 주는 등의 효력이 있다. 헌법재판으로 다루는 것은 헌법소원, 법률의 위헌심사, 탄핵심판, 권한쟁의, 정당해산의 심판 등이다.
(3) 행정재판제도
행정재판은 행정청의 공권력 행사에 대한 불복 등에 관한 재판이며, 행정소송법이 정한 바에 의한다.
(4) 탄핵제도
탄핵제도는 형벌 또는 보통의 징계 절차로는 처벌하기 어려운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였을 때, 국회가 해당 공무원을 탄핵의결(탄핵소추)하면 헌법재판소가 재판을 통해 그 공무원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제도이다. 이 때 국회의 탄핵소추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해당 공무원을 탄핵할 것인지 아닌지를 재판하는 것이 바로 탄핵심판이다.
심판대상은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 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다(헌법 제65조).
(5) 선거제도(electoral system)
선거는 다수인이 일정한 직(職)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대통령 등 국가기관을 선임하는 선거이다. 이 경우 선거는 ① 국민의 대표자를 직접 선택하고, ② 간접적으로는 정부·내각 또는 정치를 선택하며, ③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기초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선거에 참가하는 다수인의 전체를 선거인단(選擧人團)이라 하는데, 선거인단은 합의체(合議體)이므로 선거는 합의체에 의한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개개의 선거인이 선거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지명에 참가하여 행하는 의사표시를 투표(投票)라고 한다. 선거인단이 지명한 사람, 즉 당선자는 지명을 승낙함으로써 일정한 직의 신분을 얻는 것이므로 선거는 선거인단과 당선자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6) 의회주의
국가의 최종적인 정치적 결정이나 법률의 제정을 의회에서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행하는 정치방식을 말한다.
영국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발달하였는데 이는 법치주의나 국민주권주의와의 유기적 결합에 의하여 실현되는 근대국가의 원리이기도 하다.
교양과 재산이 있는 시민의 자유, 사상·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등 일련의 자유권의 존재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단지 의회를 가진다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의회가 정책의 최고 결정권을 가지며, 행정부를 교체시킬 힘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메이지헌법하의 일본이나 바이마르헌법하의 독일 등에 의하여 여러 가지로 유린당한 역사가 있으나,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국가가 이를 채택하고 있다.
행정권의 비대를 비판하고 의회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는 경우, 또는 미국식 대통령제에 대하여 의원내각제를 가리키는 경우에 의회주의라는 말이 쓰이는 일도 있다.
(7) 사법권의 독립
사법권 독립은 곧 재판(심판) 독립의 원칙 내지 판결의 자유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재판독립의 원칙 내지 판결의 자유는 입법부나 행정부로부터의 법원의 독립과 그 자율성, 그리고 재판에 있어서 어떠한 내외적 간섭도 받지 아니하는 법관의 직무상 독립과 신분상의 독립에 의하여 실현된다.
재판독립의 원칙을 내용으로 하는 사법권의 독립은 원래 전제군주에 의한 자의적인 재판이나 행정부 내의 기관에 의한 행정사건의 재판을 배제함으로써(官房司法의 否認),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여 줄 수 있는 민주사법을 지향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사법권의 독립은 행정부의 지배력이 미치는 특별법원이나 행정기관이 종심(終審)을 담당하는 재판을 배격하고, 그 대신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독립한 법원이 법과 양심에 따라서 하는 공정하고 정당한 재판을 확보하려는 데 그 제도적 의의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사법권의 독립은 권력분립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민주적 법치국가에 있어서 법질서의 안정적 유지와 국민의 자유 및 권리의 보장을 완벽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공정한 재판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다.
공정한 재판의 확보는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되지 아니하고는 달성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평한 재판에 의한 인권의 보장, 특히 소수자보호와 헌법보장이라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불가결의 헌법원리의 하나이다.
물론 사법권의 독립이라 할지라도 그 구체적인 성격이나 내용은 헌법에 따라 반드시 동일하지는 아니하다. 우리나라 헌법에 있어서 사법권의 독립은 법원의 자치를 위한 법원의 독립과 또한 재판의 독립을 위한 법관의 독립을 그 내용으로 한다.
(8) 복수정당제도(System der Pluralparteien)
복수정당제는 양당제(兩黨制)를 의미하기도 하나, 정당 설립의 자유는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정치적 기본 질서의 하나에 속하기 때문에 2개 이상의 정당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복수정당제는 2개의 정당만을 인정하는 제도라고 하기보다는 단일정당제를 부인하는 제도라고는 데 의의가 있다.
민주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복수정당제를 채택하여 이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에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양당제가 발달한 국가도 있으며, 프랑스나 독일과 같이 다수정당제가 발달한 국가도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8조 제1항에서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9)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이른바 ‘표현의 자유’는 사람의 내심의 정신작용을 외부로 향해 공표하는 정신 활동의 자유이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정치상의 의사결정은 종국적으로는 국민에 의해 이루어진다. 적절한 의사결정을 이루려면 그 전제로서 충분한 정보와 거기에 기초를 두는 논의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필요 불가결한 권리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10) 저항권
1) 의의
입헌주의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려는 국가기관 또는 권력의 담당자에 대하여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다른 법적 구제수단이 더 이상 없을 경우, 헌법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국가기관이나 권력담당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 저항권을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4․19혁명이 민주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저항권의 행사였다는 국민적 합의를 표현하고 있다.
2) 법적 성격
저항권의 법적 성격에 대하여 자연법상의 권리라는 이론적 입장과 실정법상의 권리라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저항권은 국민 주권론, 계약설과 같은 자연법사상에서 연원한 것으로 미국의 경우에는 1776년 독립선언과 각주의 권리장전이 저항권을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의 인권선언(1789년)과 1793년의 헌법도 저항권을 국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3) 행사와 그 한계
국민은 일반적으로 공권력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공권력이 위헌 또는 위법하게 행사되거나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에도, 국민은 실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제방법을 활용하거나 선거 또는 언론을 통하여 그 과오를 시정하게 하는 것이 통상적으로 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공권력의 담당자가 민주적·법치국가적 기본질서나 기본권보장의 체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명백히 정의에 반하여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국민이 실력을 행사하여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용인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저항권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경우에 한하여, 국가권력의 행사가 불법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된 어떤 수단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로 저항의 수단만이 남아 있을 경우에 한하여 행사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입헌주의 체제를 유지, 수호하는 목적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