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道德經

 

1. 처음에

(1)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현실을 天下無道, 즉 혼란으로 파악한데 대하여 노자는 이를 변화로 보고 그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공자는 正名을 강조하고 노자는 非名을 강조한다.

 

(2) 공자의 논어는 첫 글자가 으로 시작하고, 노자의 도덕경은 로 시작한다. 爲學日益 爲道日損(48)은 더하는 일이고 는 덜어내는 일이다. 덜어내고 덜어내면 無爲에 이르게 된다.

 

(3) 노자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눈다. 上士, 中士, 下士가 그것이다. 훌륭한 사람은 를 들으면 묵묵히 실천하고, 평범한 사람은 의심부터 하며, 모자란 사람은 마구 비웃는다(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40)는 것이다.

<論語 季氏>에서는 배움을 대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인간을 네가지 유형으로 나누는데, 가장 으뜸은 ‘生而知之者’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이고, 다음 가는 사람은 ‘學而知之者’로 배워서 아는 자이고, 그 다음 가는 사람은 ‘困而學之者’로 고난을 통해서 배우는 자이고, 마지막으로 ‘困而不學’으로 고난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하는 자이다.

 

(4) 노자는 통치자의 가장 이상적인 통치방식으로 無爲를 제시하고 있다.(일종의 帝王術)

 

2.

『① 非常(1)

일반적으로 ①③는 길(way), 진리(truth), 준거(criterion), 원칙(principle), 불교의 Darma의 의미로 풀이한다.

Darma는 법의 원칙, 혹은 정의, 삶 안에서 올바르게 지켜야 할 것들을 준수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 대해서는 말하다(say), 형용하다(express)로 이해하는 입장, 따라가다(follow), 따르다(conform), 받들다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다.

道可道 非常道를 전자에서는 도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로 해석하고, 후자에서는 도는 법도삼아 따를 수는 있어도 영원한 도는 아니다.”라고 해석한다.

 

으로도 쓰였는데, 이는 불변성 내지 영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찌되었든 非常道는 이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영원불변의 운행법칙)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진리는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것이다.(진리의 가변성) 그래서 노자는 변화를 수용하고 변화를 우주만물의 원리로 이해하여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40) =上善若水(8)라고 했다.

요컨대, 는 바로 자연의 모습을 가장 근원적인 면에서 추상화한 개념이다.

 

3. 無爲

먼저 의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종래 를 하다(do), 또는 힘쓰다(strive)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행위주체의 의지가 개입되는 기대하다(expect)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無爲를 언급한 사람은 노자 외에 장자와 한비가 있다. 장자는 無爲에서 無爲를 찾는 진짜 無爲이고, 한비는 無爲에서 유위를 찾는 가짜 無爲라면 노자는 모든 것을 동전의 앞뒷면이 있는 것처럼 보기에 진짜 無爲와 가짜 無爲를 언급한다. 도덕경을 보면 無爲而無不爲가 無爲而無以爲로도 표기되어 있는데, 전자는 가짜 無爲이고 후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진짜 無爲라는 것이다. 이 전자와 후자를 합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생각도 없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다 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48)

無爲而無不爲에 대해 전자의 입장에서는 無爲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이해하여 하는 일이 없더라도 하지 않는 바가 없다.(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지 않음이 없다.)” 또는 힘쓰는 일이 없더라도 힘쓰지 않는 일이 없다.”로 해석하고, 후자의 입장에서는 바람이 없어지면 무엇이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로 해석한다.

 

하지만 無爲有爲不爲는 달리 해석하여야 할 듯하다. 전자는 술어+보어의 구조이고 후자는 부정사+술어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無爲有爲는 행위주체의 의지가 개입되어 모종의 결과나 목표(대가)를 상정한 의도하다, 기대하다의 의미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有爲는어떤 일을 할 때 거기에 집착하거나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이고, 無爲는 어떤 대상이나 목표에 대한 집착이나 기대없이 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이다. (; 등산)

이처럼 無爲는 바람이 없는 것, 욕망이 없는 것을 의미하기에 어떤 바람이나 목적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순간순간 온 정성을 다할 때 무엇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게 된다.

上德無爲 而無以爲也(38)의 상태이다.

 

그리고 無不爲無爲라는 노자가 자신의 가르침을 보다 설득력있게 개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즉 이중부정(강한 긍정)을 지향한다. 無爲의 방법론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자는 의미가 숨어 있다. 즉 일반적인 관념을 뒤집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인간은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라는 물음에 접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하여 이성적합리적 인간상을 피력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를 위해서(목적의식), ~ 때문에(강박관념), 의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누가 시키니까, 누가 보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도 먹고 입고 살기 위해 돈 버는 삶에 얽매이지 않았는지?

 

4. 自然

노자가 말하는 自然은 오늘날 자연환경(Nature)과는 다른 의미로 스스로 그렇게 하다, 저절로 그렇게 되다. 스스로(저절로) 그러하다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自然는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물리적 자연이 아니라 마음과 대상의 구분, 즉 경계가 없는 상태나 외부의 간섭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盈,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2)

 

노자는 자연을 대립항-有無, 難易, 長短, 高下, 音聲, 前後-이 서로 존재의 근거가 되면서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이라는 운동력(복원력)을 매개로 모든 것이 관계망 속에서 구분되지 않고 상호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노자는 이런 자연의 원리 내지 법칙을 라는 말로 표현할 뿐이다. 그리고 에 아무런 본질적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은 것은 이 자연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25)

따라서 인간사회의 가치나 제도도 반대편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준다.

 

여기서 요즘 우리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기 소르망(Guy Sorman)정부가 국민에게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이 자선이라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박애라고 했다. 2014년 대한민국은 무상 포퓰리즘, 복지놀음에 놀아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물고기를 아무 대가없이 손에 쥐어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노하우를 가르치는 自然이 필요할 때다.

 

(2) 평준화교육도 自然에 역행하는 것 같다. 정형화된 교육이 아닌 개개인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여 계발시키는 창의력교육, 간섭보다는 관찰과 이해를 중시하는 不言之敎(43)가 필요하다.

 

5. 마치며

無爲==自然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37)

 

道常()無爲, 는 언제나 바라는 것이 없다. 는 언제 어디서나 두루 작용하여 만물에 이로움을 주지만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

 

백만장자코드(원제 Change your thinking, change your life)를 쓴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보상을 바라지 않고 주면 줄수록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훨씬 많은 것을 얻게 된다.”고 했다. 참고로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은 “제가 뭐 도울 게 없을까요?”는 말이었다고 한다.

결국 노자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이다.

를 따라 作爲나 욕심을 버리고 참나를 찾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길이요, 유교에서 말하는 天人合一, 克己復禮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가 되는 길이다.

 

 

󰁴참고문헌

처음부터 새로 읽는 노자 도덕경, 문성재, 책미래, 2014

노자강의, 야오간밍(姚淦銘), 손성하 옮김, 김영사, 2013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去彼取此), 최진석, 소나무, 2014

사람을 말하다/이중톈(李中天), 심규호 옮김, 중앙북스, 2013

 

(201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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